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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혼

[2023 환단고기 북콘서트] 한류문화의 근원 빛의 바람1 - 스위스 그랜드호텔

https://www.youtube.com/live/aayHC7iWYcU?feature=share&t=2460

안경전 대한사랑 상임고문이자, 증산도 종도사님 말씀 정리입니다.

 

오늘 환단고기 콘서트 십일주년 특별한 날입니다. 
아주 기쁜 날입니다.  뭔가 근본이 진리의 원형이 이제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저 깊은 내면의 영혼 속에서 빛이 되어서 열리는 순간이 되었다고 봅니다. 
다섯 분이 쓰신 환단고기 1천년의 오랜 세월에 걸쳐서 그 책들이 성립되었고요. 
또 마침내 오늘 한류 문화의 근원 이 우주의 대광명, 이 빛의 바람이 과연 무엇인지 아마 제 생애로 보면은
여기 앉아 계시는 모든 분들도 같은 인연으로 이렇게 만났기 때문에 아마 몇천 년이 아니고 한 1만 년 걸려서 오늘 이 순간을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중한 인연.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환단고기는 어떤 책이냐 환단고기는 어떻게 읽어야 되는가 오늘 암담한 인류의 미래 제6의 멸종 시대라고 하는 바로 이 변혁의 중심 시간대, 이 후천 개벽에 그 시간대를 맞이해서 환단고기가 과연 오늘 이 인류에게 또 우리 한민족에게 앞으로 통일 역사 시대를 여는데, 또 우리들이 하루 생활 속에서 어떤 빛을 줄 수가 있는가?

 

환단고기는 아주 거짓말 조작된 책이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보셨죠?  환빠 저 친구들은 환빠다. 환단고기에  빠진 놈들이다. 

환단고기는 위서론 시비가 있고 그들이 별별 주장을 다 했어요. 
환단고기는 79년 80년대에 나왔다. 
그전에는 그런 책이 없었다. 이름도 다 조작한 것이다. 
거기서부터 평등 자유 국가 이런 근대에 문화 언어가 쏟아져 나온다. 
그런 모든 트집거리가 사실은 단 한 가지 제대로 맞는 것이 없고 다 그것을 억지 논리를 위해서 꿰어 맞추고 조작을 하고 그랬다.
공부 끈이 너무 짧아가지고 그러니까 환단고기는 지금 강단사학이나 역사학에서 말하는 그런 정도의 학문의 틀을 가지고는 도저히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다.  *지금 환빠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책을 읽어보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무지성으로 추종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적어도 30년 또는 한 생애를 다 바쳐서 학문의 전 영역을 지구촌 현장 중심에 서서 서슬이 아주 시퍼렇게 깨어진 최상의 지성의 눈으로 봐야 우리가 제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

 아주 고차원의 연산 작용을 근본으로 하는 지금의 ai 문명은 이제 서두에 들어섰지만은
인간에게 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그런 영역이 있어요. 
과학으로 해결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그런 불행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기후 붕괴 이런 언어를 써요. 
세계인들이 기후 붕괴 여기서 수많은 그런 새로운 괴병들이 계속 출몰을 하고 경제가 무너지며 그리고 세계의 정치 질서가 전환을 하게 됩니다. 
오늘 이때 우리가 환단고기야말로 이 모든 문제의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운명의 지평을 열 수 있는 진정한 역사서 문화 원전이다 하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위서 논쟁에서 우리가 두 가지를 정리해 보면은 참 멋진 해답을 찾을 수가 있어요. 
 1924년에 서문을 쓰고 안동 출신으로 아주 당대 대학자였던 심당 미고선이라는 분이 심당 전서라는 책을 썼어요. 
여기 보면은 창고 문헌이 422권이 됩니다. 
여기 환단고기라고 환단고기 초판본 1911년 30권이 나온 후 13년 뒤에 13년 뒤에 이 책 서문이 쓰여졌는데 여기에 환단고기 환단고기라고 하는 책을 내가 이렇게 인용을 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환단고기라고 하는 이름이 저기 나와 있어요. 
내가 환단고기를 직접 보고 거기서 핵심을 썼단 말이야. 
오른쪽에 나와 있죠 환단고기, 환단고기라는 건 원래 이런 이름이 없었고 조작됐다고 1979년이 돼서 나왔다. 
여기에 대해서 이제 엉뚱한 반론을 펴고 그러는데

두 번째는 환단고기에는 원본
1911년 30권이 나왔고 그리고 그 한 권을 가지고 한암당 이유립 선생님이 대전에 오셨어요. 
이분은 전생에서부터 저하고 인연이 있어요. 
내가 살던 어린 시절 그 집하고 한 10분 거리가 안 되는데 제 부친께서 그분하고 잘 아는 사이가 돼서 뭐가 있느냐 하면 여기에 커발환이라고 하는 이런 일종의 교육 회보라고 할 수가 있는데 1965년도에 제1호가 나왔습니다. 
이게 1965년도에 이것을 10년 이상 이 분이 찍어서  이제 제가 이렇게 묶었는데 커발환이라고 하는 이런 회보를. 회보를 내가 어린 시절 10대 만나서 커발환이 뭐냐?
커발환이 뭐냐 말이야. 그래서 1949년도에 오형기에게 이제 이 책을 그대로 한번 옮겨 쓰는 것을 허락을 하셔서 책 한 권이 또 나온 거야.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1979년도에 이분이 다시 씁니다. 
오형기가 79년도에 그때 100권을 찍었는데 광호 이해사에서
이것을 조병윤이라는 분이 한암당 이유립 선생 모르게 그걸 찍었어요. 
그래서 대노를 하셔가지고 당장 수거하라고 그때 육십권이 수거됐다고 그러는데 결론은 이분이 이제 이 책을 내려주신 찍으신 바로 운초 계연수 선생이 우리 스승님이 앞으로 오는 경신년 1980년에 이 책을 세상에 공개해라. 
그 명을 어긴 거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그 오자를 새로 써가지고
오자가 예전 79년도 파는 이렇게 한 페이지로 정오표가 있어요. 
이제 그것을 다 바로잡아가지고 79년도에 나온 거지만은 정식 세상에 낸 것은 경신년 바로 1980년 10월 3일날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형기라는 분이 이제 제가 직접 이렇게 아드님 내외를 만나서 병풍을 전수를 받았는데 삼일신고를 썼어요. 
커발환 환웅님이 배달국 세우고 직접 국민들을 가르치려고 했던 삼일신고 5장으로 이제 행촌 이암이라는 분이 이걸 나눠놨는데
저 글씨 서체를 보면은 동일한 거야. 
75년도 또 80년도에 세상에 나온 책 우리 아버지 비체가 맞다. 
그래서 전체에는 원본 1971년 개현수 선생님이 찍은 판본하고 49년도 정서하고 79년도 광오이해사 80년도에 배달의숙본이 바로 남한에서는 한 분이 그것을 직접 정서하고 이분이 이제 이유립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 위원장으로서 평생 동지였어요.
이런 서지학적인 문헌 생성의 그런 연대를 저들이 잘 몰라요. 
저들이 참 불쌍한 친구인데 불쌍한 친구인데 저들을 우리가 타박하고 그렇게 야단스럽게 얘기할 게 아니고 시대 한 동반자로서 함께 포용을 하고 싸우는 건 별로 안 좋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문화의 원형을 찾으면은 바로 잃어버린 역사를 동시에 찾게 된다. 
하는 제 나름대로의 확신에 찬 그런 공식이기 때문에 역사 문화 광복이 오늘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는 제1의 명제이며 이 시대에 우리가 그런 뭐라고 할까요?  참 불멸의 과업이다.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죠.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 계속)